가치평가
한빛반도체 한 주는 오늘 72,000원에 거래된다. 이 숫자는 가격이다. 그렇다면 이 한 주는 얼마짜리인가? 가격은 화면에 뜨지만 가치는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다. 이 장은 가치를 직접 계산한다. 회사가 앞으로 벌어들일 현금을 하나씩 오늘의 돈으로 바꿔 더하는 방법, 그 계산이 어떤 가정 몇 개에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 그리고 그 흔들림을 숨기지 않고 "가치는 이 정도 범위"라고 말하는 법을 손으로 익힌다.
- 가치를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로 정의하고, 할인율이 먼 미래의 돈을 얼마나 줄이는지 감각으로 익힌다.
- 할인율을 요구수익률로 이해하고 CAPM과 WACC로 어림한다.
- 잉여현금흐름(FCF)을 만들고, 예측 기간과 터미널 가치로 나눈 DCF로 한빛반도체의 주당 가치를 구한다.
- 터미널 가치가 전체 가치의 대부분이라는 사실과, 영구성장률이 할인율에 다가갈수록 가치가 폭발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 고든 성장 모형과 2단계 배당할인, 역DCF, 멀티플 평가를 쓰고 서로 비교한다.
- 시나리오·몬테카를로·민감도로 가치를 범위로 표현하고, 안전마진으로 "살 가격"을 정한다.
가격과 가치는 다르다
6장에서 한빛반도체의 PER이 10이라는 것을 보았다. 주가 72,000원이 한 주당 이익 7,200원의 10배라는 뜻이다. 하지만 PER 10이 싼지 비싼지는 PER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이익이 앞으로 두 배가 될 회사라면 PER 10은 헐값이고, 이익이 반토막 날 회사라면 비싸다. 결국 질문은 앞으로 이 회사가 얼마를 벌어 주느냐로 돌아온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회사가 앞으로 만들어 낼 현금에 대한 몫을 사는 것이다(1장). 그러니 한 주의 내재가치(Intrinsic value)는 그 몫으로 앞으로 받을 현금을 모두 더한 값이어야 한다. 다만 그냥 더하면 안 된다. 10년 뒤의 100만원은 오늘의 100만원보다 덜 귀하다. 오늘 100만원이 있으면 예금에만 넣어도 10년 뒤에는 그보다 많아지기 때문이다. MoneyBook 4장에서 본 복리를 거꾸로 돌리는 셈이다. 미래의 돈을 오늘의 돈으로 바꾸는 일을 할인(Discounting)이라 하고, 바꾼 값을 현재가치(Present value)라 한다.
가치 = 앞으로 받을 현금흐름을 각각 할인해서 더한 값. 이 장의 모든 시뮬레이터는 이 한 문장의 부품을 하나씩 움직여 본다. 무엇을 현금흐름으로 볼지, 얼마로 할인할지, 얼마나 먼 미래까지 셀지.
할인: 내일의 돈을 오늘의 돈으로
연 9%를 벌 수 있는 사람에게 1년 뒤의 100만원은 오늘의 약 91.7만원과 같다. 오늘 91.7만원을 9%로 1년 굴리면 100만원이 되기 때문이다. 2년 뒤라면 두 번 나눠 약 84.2만원, t년 뒤라면 \((1+r)^t\)로 나눈다. 앞으로 받을 현금흐름이 여러 해에 걸쳐 있으면 각각 이렇게 줄인 다음 더한다.
아래는 앞으로 10년 동안 해마다 100만원씩 받는 약속이다. 점선 상자가 명목 금액, 채운 막대가 오늘의 가치다. "할인 재생"을 누르면 막대가 한 해씩 줄어든다. 할인율 슬라이더를 0%에서 20%까지 움직여 먼 해의 막대가 얼마나 더 빨리 녹는지 보자.
할인 사다리: 해마다 받는 100만원의 오늘 가치
할인율 9%에서 10년 동안 받는 1,000만원의 현재가치는 약 642만원이다. 10년째 받는 100만원은 약 42만원, 30년째 받는 100만원은 약 7.5만원에 불과하다. 두 가지를 기억하자. 첫째, 할인율이 조금만 바뀌어도 먼 미래의 가치가 크게 바뀐다. 둘째, 그런데도 먼 미래는 0이 아니다. 회사는 10년 뒤에도, 30년 뒤에도 돈을 벌 수 있고, 그 꼬리를 모두 합치면 생각보다 크다. 이 두 사실이 이 장 내내 다시 나온다.
할인율은 어디서 오는가
할인율은 "이 돈을 여기에 묶어 두는 대가로 최소한 이만큼은 벌어야 한다"는 요구수익률(Required return)이다. 다른 데 넣었으면 벌었을 수익, 즉 기회비용이다. 떼일 걱정이 거의 없는 국채가 연 3.5%를 준다면, 그보다 훨씬 흔들리는 주식에는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얼마나 더 요구할지는 그 주식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달렸다.
가장 널리 쓰는 어림법이 CAPM(Capital Asset Pricing Model,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이다. 주식의 위험 가운데 여러 종목을 섞어도 사라지지 않는 시장 전체의 흔들림만 보상받는다고 보고, 그 크기를 베타(Beta, β)로 잰다. 베타는 시장이 1% 움직일 때 그 주식이 평균 몇 % 움직이는지다. 베타 1.3인 한빛반도체는 시장보다 30% 더 크게 출렁인다. 베타를 재는 법은 13장, CAPM이 나오는 이론은 14장에서 다시 다룬다.
아래 그림의 선이 증권시장선(Security Market Line)이다. 다섯 회사의 베타를 이 선 위에 찍으면 각자의 요구수익률이 나온다. 슬라이더로 국채 금리를 올리거나, 시장 점(β = 1)을 위아래로 끌어 위험 프리미엄을 바꿔 보자.
증권시장선 위의 다섯 회사
회사는 주주 돈만 쓰지 않는다. 한빛반도체는 은행과 채권자에게서 2조원을 빌렸다. 회사 전체가 벌어들이는 현금은 주주와 채권자가 나눠 가지므로, 회사 전체의 현금흐름을 할인할 때는 두 사람의 요구수익률을 각자의 몫만큼 섞은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을 쓴다. 이자는 비용으로 처리되어 세금을 줄여 주므로 부채의 비용에는 \((1-t)\)를 곱한다.
아래 그림에서 사각형의 폭은 자본의 비중, 높이는 그 자본의 비용이다. WACC는 두 사각형의 넓이를 합해 폭 전체로 나눈 높이, 곧 평균 높이다.
WACC: 두 자본 비용의 넓이 평균
빚이 공짜 점심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다. 부채가 늘면 회사가 망할 위험이 커지고, 주주와 채권자 모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한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회사의 실제 자본 구조를 그대로 쓰고, WACC를 0.5%p나 1%p 바꿔 가며 결과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함께 본다. 이 장도 그렇게 한다.
무엇을 할인하는가: 잉여현금흐름
할인할 현금흐름으로 순이익을 쓰면 안 될까? 회계 이익은 실제 현금과 다르다(5장). 반도체 회사는 공장 설비를 계속 사야 이익을 낼 수 있다. 설비투자에 쓴 돈은 주주에게 돌아갈 수 없는 돈이다. 회사가 사업을 유지하고 키우는 데 필요한 돈을 모두 쓰고 나서 주주와 채권자에게 자유롭게 나눠 줄 수 있는 현금을 잉여현금흐름(FCF, Free Cash Flow)이라 한다.
한빛반도체의 영업이익 9,000억원에서 출발해 한 단계씩 FCF를 만들어 보자. "다음 단계"를 눌러 막대를 하나씩 세우고, 설비투자와 운전자본을 움직여 FCF가 어떻게 바뀌는지 본다.
영업이익에서 잉여현금흐름까지
기본값에서 한빛반도체의 FCF는 9,000 − 1,800 + 6,000 − 7,700 − 500 = 5,000억원이다. 시가총액 7.2조원 대비 약 6.9%다. 순이익(7,200억원)보다 작은 것은 설비를 사는 데 돈이 계속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제 이 5,000억원이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를 가정하고, 각각을 9%로 할인해 더하면 회사의 가치가 나온다.
DCF: 몇 년은 예측하고, 나머지는 한 줄로
현금흐름할인법(DCF, Discounted Cash Flow)은 이렇게 진행한다. 첫째, 앞으로 몇 년(예측 기간, 보통 5~10년)의 FCF를 한 해씩 예측한다. 둘째, 그 뒤로는 해마다 일정한 비율로 영원히 자란다고 보고 한꺼번에 값을 매긴다. 이것이 터미널 가치(Terminal value, 잔존가치)다. 셋째, 모두 WACC로 할인해 더하면 회사 전체의 값인 기업가치(EV, Enterprise value)가 나온다. 넷째, 여기서 채권자 몫인 순부채를 빼고 주식 수로 나누면 주당 가치다.
왜 순부채를 빼는가? 집으로 생각하면 쉽다. 5억원짜리 집에 대출이 2억원 끼어 있으면 집주인의 몫은 3억원이다. 기업가치는 집값, 주주가치는 대출을 뺀 집주인의 몫이다. 한빛반도체의 차입금은 2조원, 가진 현금은 1조원이므로 순부채(Net debt)는 1조원이다.
터미널 가치는 예측 기간 마지막 해의 FCF가 이듬해부터 해마다 g씩 영원히 자란다고 보고 계산한다. 영원히 이어지는 등비수열의 합이라 식이 짧다.
이제 한빛반도체를 직접 평가해 보자. 기본값은 FCF 5,000억원, 5년 동안 연 8% 성장, WACC 9%, 영구성장률 2%다. 위쪽 막대는 할인한 현금흐름이 쌓여 주주가치가 되는 과정이고, 아래 띠는 그 결과인 주당 가치를 현재가 72,000원과 비교한다.
한빛반도체 DCF 계산기
기본값의 계산을 따라가면 이렇다. 1~5년 FCF는 5,400억원에서 7,347억원까지 자라고, 할인한 합은 약 2조 4,320억원이다. 5년째 FCF에 1.02를 곱해 7%(= 9% − 2%)로 나눈 터미널 가치는 약 10조 7,051억원이고, 이를 5년 할인하면 약 6조 9,576억원이다. 더하면 기업가치 약 9조 3,896억원, 순부채 1조원을 빼면 주주가치 약 8조 3,896억원, 1억 주로 나누면 주당 약 83,896원이다. 현재가 72,000원보다 약 16.5% 높다.
그런데 막대를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공들여 한 해씩 예측한 다섯 해를 모두 합쳐도, 한 줄짜리 식으로 구한 터미널 가치보다 훨씬 작다. 얼마나 작은지 도넛으로 보자. 예측 기간을 늘리면 비중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본다.
가치의 몇 %가 터미널 가치인가
기본 가정에서 한빛반도체 가치의 약 74%가 6년째 이후, 즉 아무도 구체적으로 예측하지 않은 먼 미래에서 나온다. 예측 기간을 3년으로 줄이면 83%, 20년으로 늘려도 40%다. DCF는 정밀한 계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회사가 먼 미래에 얼마나 꾸준히 자랄 것인가"라는 한 가지 믿음이 결과의 대부분을 정한다. 그 믿음이 숫자로는 영구성장률 g와 할인율 r이다.
g가 r에 다가갈 때: 고든 성장 모형
터미널 가치 식은 사실 오래된 식 하나를 빌려 온 것이다. 내년에 배당 \(D_1\)을 주고 그 뒤로 해마다 g씩 늘리는 주식의 가치는 \(D_1 / (r - g)\)이다. 이를 고든 성장 모형(Gordon growth model)이라 한다. 성장이 거의 끝난, 꾸준히 배당하는 회사에 잘 맞는다. 누리식품이 그런 회사다. 올해 주당 배당이 1,900원, 요구수익률을 7%로 보자.
분모 \(r - g\)를 보라. g가 r에 가까워지면 분모가 0에 가까워지고, 가치는 끝없이 커진다. 아래 곡선 위의 점을 오른쪽으로 끌어 g를 r 쪽으로 밀어 보자.
고든 곡선: 누리식품의 성장률을 끌어 보기
g를 2%에서 3%로 1%p만 올렸을 뿐인데 가치는 약 26% 오른다. 6%에서는 다섯 배가 된다. 수학적으로는 g가 r과 같거나 크면 가치가 무한대다. 현실에서 이것은 "영원히 요구수익률보다 빨리 자라는 회사"라는 뜻인데, 그런 회사는 언젠가 경제 전체보다 커져야 하므로 존재할 수 없다. 영구성장률을 높게 잡은 DCF가 터무니없는 값을 내는 이유가 이것이다. g는 r에서 충분히 멀리, 보통 경제성장률 이하로 잡는다.
한빛반도체로 돌아가자. 할인율(WACC)과 영구성장률을 함께 바꾸면 주당 가치는 어떻게 될까? 아래 격자의 칸마다 DCF를 한 번씩 돌린 결과를 적었다. 빨간 칸은 현재가보다 가치가 높고, 파란 칸은 낮다. 칸 위에 마우스를 올리거나 눌러서 값을 확인하자.
민감도 히트맵: WACC × 영구성장률
현실적으로 그럴듯한 범위, WACC 8~11%와 영구성장률 1~3%만 움직여도 주당 가치는 약 5.7만원에서 11.8만원까지 두 배 넘게 벌어진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칭이 아니다. 할인율을 낮추고 성장률을 높이는 쪽(왼쪽 위)은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반대쪽은 천천히 줄어든다. 낙관적인 가정 하나가 비관적인 가정 하나보다 결과를 더 크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가치평가에서 늘 조심해야 할 쪽은 낙관이다.
감 잡기: 이 가정이면 얼마일까
지금까지 만진 것으로 감을 시험해 보자. 무작위로 정한 가정이 주어지면, 계산하지 말고 주당 가치를 어림해 수직선 위에 점을 끌어 놓는다. 기준점은 하나다. FCF 5,000억원, 성장 8%, WACC 9%, 영구 2%면 약 8.4만원. 여기서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만 따져 보면 된다.
주당 가치 맞히기
FCF가 20% 크면 가치도 대략 20% 남짓 크다. WACC 1%p는 약 15~20%, 영구성장률 1%p는 약 11~15%, 성장률 4%p는 약 17~20%를 움직인다.
배당으로 보는 가치: 2단계 배당할인
주주가 실제로 손에 쥐는 현금은 배당이다. 그래서 FCF 대신 배당을 할인하는 배당할인모형(DDM, Dividend Discount Model)도 쓴다. 배당을 꾸준히 주는 누리식품에 잘 맞는다. 고든 모형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성장률을 가정했지만, 현실의 회사는 한동안 빠르게 자라다가 점점 느려진다. 그래서 몇 년은 높은 성장률 g₁, 그 뒤로는 낮은 영구성장률 g₂를 쓰는 2단계 모형을 쓴다.
누리식품의 요구수익률은 CAPM으로 3.5% + 0.6 × 5.5% = 6.8%다. 여기서는 반올림해 7%로 시작한다. 첫 단계가 끝난 뒤의 영구성장률은 2%로 고정했다. 막대는 해마다 받는 배당(점선은 명목, 채운 것은 현재가치)이고, 오른쪽은 두 단계의 몫을 쌓은 값과 현재가 38,000원이다.
누리식품 2단계 배당할인
배당이든 FCF든 구조는 같다. 가까운 미래는 한 해씩, 먼 미래는 한 줄로 계산하고, 결과의 대부분은 그 한 줄에서 나온다. 배당할인은 배당성향이 안정적인 회사에는 직관적이지만, 배당을 거의 주지 않는 모아플랫폼이나 적자인 별빛바이오에는 쓸 수 없다. 배당 자체가 어떻게 정해지고 주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8장에서 다룬다.
역DCF: 지금 가격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DCF의 약점은 분명하다. 가정을 조금만 바꿔도 결과가 크게 바뀌니, 원하는 답을 정해 놓고 가정을 맞추기 쉽다. 그래서 질문을 뒤집는다. "이 회사의 가치는 얼마인가" 대신 "지금 가격이 맞으려면 회사가 얼마나 자라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를 역DCF(Reverse DCF)라 한다. 할인율과 영구성장률은 그대로 두고, DCF 결과가 현재가와 같아지는 성장률을 찾는다.
아래 곡선은 앞으로 10년 성장률에 따른 주당 가치다(WACC 9%, 영구 2%). 가로선이 지금 가격이다. 가격선을 위아래로 끌면 곡선과 만나는 곳, 곧 그 가격이 가정하는 성장률이 바뀐다. 한빛반도체와 모아플랫폼을 바꿔 가며 보자.
역DCF: 가격이 가정하는 성장률
역DCF는 "얼마짜리인가"라는 답 없는 질문을 "이 성장이 그럴듯한가"라는 판단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꾼다. 한빛반도체의 현재가는 연 3.6% 성장이면 정당화된다. 위의 DCF에서 가정한 5년 8%보다 훨씬 낮은 기대다. 반대로 모아플랫폼의 주가는 10년 연속 20% 넘는 성장을 이미 가격에 넣었다. 그런 성장을 이루는 회사는 드물고, 이루더라도 주가는 "예상대로"일 뿐이다. 6장에서 본 PER 50의 뜻이 이것이다. 높은 PER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지만, 시장이 이미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알고 사야 한다.
상대가치: 비슷한 회사와 비교하기
실무에서 더 자주 쓰는 방법은 상대가치 평가(Relative valuation, 멀티플 평가)다. 비슷한 회사들이 이익의 몇 배(PER), 순자산의 몇 배(PBR), EBITDA의 몇 배(EV/EBITDA)에 거래되는지 보고 그 배수를 우리 회사에 곱한다. 동네 아파트 시세로 우리 집 값을 어림하는 것과 같다. 한빛반도체의 주당순이익(EPS)은 7,200원, 주당순자산(BPS)은 60,000원, EBITDA는 1.5조원이다.
아래 그림은 방법마다 나오는 가치 범위를 가로 막대로 늘어놓은 것이다. 모양 때문에 흔히 축구장 차트라 부른다. 비교 대상 회사들의 PER 범위를 바꿔 보고, "업종 전체가 비싸게 거래되는 시기"를 켜 보자.
멀티플 평가와 DCF 비교(축구장 차트)
멀티플은 빠르고, 시장이 지금 비슷한 회사에 매기는 값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 장점이 곧 약점이다. 업종 전체가 거품이면 멀티플로 구한 가치도 거품이다. 닷컴 버블 때 인터넷 회사들은 서로를 비교하며 수십, 수백 배의 PER을 정당화했다. DCF는 느리고 가정에 민감하지만 시장 분위기와 독립적이다. 두 방법이 비슷한 범위를 가리키면 안심할 근거가 생기고, 크게 다르면 어느 쪽 가정이 이상한지 따져 볼 신호가 된다.
가치는 점이 아니라 범위다
여기까지 오면 결론이 보인다. 가치를 "83,896원"처럼 원 단위까지 말하는 것은 정밀해 보이지만 정확하지 않다. 가정마다 그럴듯한 범위가 있고, 그 범위가 결과를 몇 만원씩 흔든다. 그렇다면 가치를 처음부터 범위로 다루면 된다. 세 가지 방법을 차례로 써 본다.
첫째, 시나리오 분석(Scenario analysis)이다. 몇 개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고 각각에 확률을 매긴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는 낙관(성장 12%, WACC 8.5%, 영구 2.5%), 지금 그대로의 기본(8%, 9%, 2%), 업황이 꺾이는 비관(2%, 10%, 1%). 아래 확률 막대의 경계를 끌어 확률을 나눠 보자.
시나리오 트리: 확률을 끌어 기대 가치 구하기
둘째,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Monte Carlo simulation)이다. 시나리오 세 개 대신 가정마다 불확실성의 분포를 주고, 컴퓨터로 수천 번 무작위로 뽑아 DCF를 돌린다. 성장률은 평균 8%에 표준편차 4%p, WACC는 평균 9%에 0.75%p로 흩어진다고 하자(영구성장률도 2% 근처에서 조금 흔들린다).
몬테카를로 DCF: 가치의 분포
분포는 왼쪽보다 오른쪽 꼬리가 길다. 히트맵에서 본 비대칭과 같은 이유다. 그래서 평균은 중앙값보다 높고, 평균만 보면 가치를 과대평가하기 쉽다. "현재가보다 높을 확률 75%"는 "네 번 중 한 번은 지금 가격도 비싸다"는 뜻이기도 하다.
셋째,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이다. 가치를 범위로밖에 알 수 없다면, 추정한 가치보다 충분히 싸게 살 때만 산다. 추정이 틀려도 손실을 피할 여유를 가격에서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다리를 설계할 때 예상 하중보다 몇 배 튼튼하게 짓는 것과 같다.
아래에서 안전마진을 정하면 "살 가격"이 나온다. 그리고 실제 가치(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를 끌어서, 추정이 틀렸을 때 그 가격에 산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보자.
안전마진과 살 가격
마지막으로 이 장의 모든 것을 한 그림에 모은다. 가정마다 "그럴듯한 오차"를 정하면, 그 가정 하나만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바꿨을 때의 가치를 막대로 그린다. 막대를 긴 순서로 쌓으면 회오리 모양이 되어 토네이도 차트(Tornado chart)라 부른다. 맨 아래 막대는 모든 가정이 한꺼번에 나쁘게, 또는 좋게 갈 때다.
종합: 한빛반도체 가치의 범위 만들기
현재가 72,000원은 범위의 아래쪽에 있다. 기본 추정보다 싸고, 시나리오 기대값보다도 싸다. 그렇다고 "싸니까 사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비관 시나리오, 모든 가정이 나쁘게 겹치는 경우에는 지금 가격도 비싸다. 가치평가가 주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지금 가격이 어떤 미래를 가정하고 있는지, 그 가정이 틀리면 얼마나 아픈지에 대한 지도다.
이 장의 무위험 수익률 3.5%, 시장 위험 프리미엄 5.5%, 법인세율 24%, 회사의 FCF·베타·부채는 모두 2026년 기준의 교육용 가정이거나 가상의 값이다. 실제 금리와 세율, 회계 기준은 해마다 바뀌고, 금리가 오르면 할인율이 올라 같은 회사의 가치가 내려간다(21장). 실제 분석에서는 증권사 보고서나 공시의 가정을 그대로 믿지 말고, 어떤 할인율과 성장률을 썼는지 먼저 확인한다. 이 장의 계산은 특정 종목을 사거나 팔라는 권유가 아니며, 과거의 성장이 미래의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빛반도체는 얼마짜리인가: 8.4만원, 그러나 5만~12만원
한결은 첫 주식으로 산 한빛반도체가 정말 싼지 확인하고 싶었다. 6장의 PER 10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DCF를 직접 돌렸다. 올해 FCF 5,000억원, 앞으로 5년 연 8% 성장, WACC 9%, 영구성장률 2%, 순부채 1조원, 주식 1억 주. 결과는 주당 약 8.4만원(83,896원)이었다. 현재가 72,000원보다 약 16% 높다.
기뻐하기 전에 가정을 하나씩 흔들어 보았다. WACC를 8~11%, 영구성장률을 1~3%로만 바꿔도 약 5.7만~11.8만원, 낙관과 비관 시나리오를 넣으면 약 4.9만~11.8만원이었다. 가정을 조금씩 바꾸면 대략 5만~12만원, 두 배가 넘는 범위다. 그다음 질문을 뒤집었다. 72,000원이 맞으려면 한빛반도체는 얼마나 자라야 하는가? 역DCF의 답은 앞으로 10년 동안 연 약 3.6%였다. 한결이 처음 가정한 8%보다 훨씬 낮은 기대다. 한결이 내린 결론은 "지금 가격은 크게 무리한 미래를 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전마진은 약 14%뿐이라 추정이 조금만 틀려도 사라진다"였다.
핵심 정리
- 가치는 앞으로 받을 현금흐름을 각각 할인해 더한 값이다. 할인율 9%에서 10년 뒤 100만원은 오늘 약 42만원이다. 할인율이 클수록, 멀수록 작아진다.
- 할인율은 요구수익률(기회비용)이다. CAPM은 무위험 수익률 + 베타 × 시장 위험 프리미엄으로, WACC는 자기자본과 부채의 비용을 몫만큼 섞어 어림한다. 한빛반도체는 약 9%.
- DCF는 FCF(설비투자까지 쓰고 남는 현금)를 몇 년 예측하고, 그 뒤는 터미널 가치 FCF×(1+g)/(r−g)로 묶는다. 기업가치에서 순부채를 빼고 주식 수로 나누면 주당 가치다. 한빛반도체는 약 8.4만원.
- 터미널 가치가 가치의 대부분(기본 가정에서 약 74%)이다. g가 r에 다가갈수록 가치는 폭발하고, 낙관적 가정은 비관적 가정보다 결과를 더 크게 움직인다.
- 역DCF는 현재가가 가정하는 성장률을 찾는다. 한빛반도체 72,000원은 10년 연 약 3.6%, 모아플랫폼 120,000원(PER 50)은 연 약 20%를 요구한다.
- 멀티플 평가는 빠르지만 업종 전체의 거품까지 따라간다. DCF와 함께 보고 서로 다른 이유를 따진다.
- 가치는 범위로 적는다(시나리오, 몬테카를로, 토네이도). 추정이 틀릴 것에 대비해 추정 가치보다 충분히 싼 가격, 곧 안전마진이 있을 때만 산다.
확인 퀴즈
1. 할인율이 연 9%일 때, 10년 뒤에 받는 100만원의 현재가치에 가장 가까운 것은?
2. DCF에서 터미널 가치가 전체 기업가치의 약 74%를 차지한다. 이것이 뜻하는 것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3. 내년 배당 2,000원, 요구수익률 7%인 주식을 고든 성장 모형으로 평가한다. 영구성장률을 2%에서 6%로 올리면 가치는 어떻게 되는가?
4. 역DCF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5. 어떤 주식의 가치를 100,000원으로 추정했고, 30%의 안전마진을 요구한다. 살 가격은?